아리안족의 종교와 역사, 인도 브라만교에서 불교에 이르기까지
기원전 1500년경, 페르시아 북부를 중심으로 모여 살던 유목민족인 아리안족이 가축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이동하게 되는데요, 아리안족의 이동은 선주민인 드라비다 족과의 마찰을 불러 일으키면서 전쟁으로 비화 되었고 , 결국엔 무력충돌에서 승리한 아리안족은 인도의 새로운 주인이 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선주민 이었던 드라비다 족은 뿔뿔히 흩어지게 되죠,
아리안족의 인도침입과 그 후의 생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문학작품으로는 "베다"가 있는데 그리하여 이 시대를 '베다시대'라고 불리고 있으며, 베다란 '성스러운 정신적 지식'을 의미 합니다.
이 당시 아리안족은 농경민으로 정착하게 되는데 주변 민족과의 전쟁이 잦아짐에 따라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단순한 부족 공동체에서 군주제로 이행되게 됩니다. 왕위는 세습적으로 계승되었으며 부족회의나 원로회의가 왕권을 견제하고 있었으며 또한 인종적 편견주의를 도입시킨 카스트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인도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신분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계급으로 나뉘어지는 카스트제도는 철저히 출생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었으며 계급 간의 이동이나 결혼 등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였습니다. 사제 계급인 브라만, 군인 또는 정치적 지배 계급이었던 크샤트리아, 농공상인인 비이샤는 아리안족이 차지했으며 노예 계급이었던 수드라는 비아리안족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이런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일상생활과 풍습, 사상에 전반을 폭넓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 브라만교의 몰락과 불교의 시작 #
이런 배경에서 석가모니가 태어나는 당시의 시기까지 인도를 폭넓게 지배하던 종교는 브라만교 였는데, 브라만교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숭배라는 원시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특히 제물을 바치는 것을 강조했는데 가족 단위로 제사를 올리기도 하고 전 부족이 대규모로 희생물을 바치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브라만교의 형식적인 종교의식에서 이탈하려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우파니샤드 철학으로 이들은 제물을 바치는 종교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된 지식을 통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브라만교는 만인을 포용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었으며 값비싼 제례와 엄격한 계급제도, 사제 계급 횡포는 하층민들에게 분도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으며, 자이나교를 비롯한 불교 같은 신흥종교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