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李白) 시_ 산중문답(山中問答) 중국 당나라 시인
중국 당나라 시기에는 중국의 서정시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시기이다.
귀족문화가 일찌기 발달하였던 육조시대에 발달하게 된 시문학이 유교적 운리관에 의해 엄격한 형식과 정치적인 목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면 당나라의 시는 인간의 근본적인 서정성을 주제로 크게 발달하게 된다.
무엇보다 당나라 이전의 시기는 시문학이 궁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면 당나라 시기에는 시문학이 널리 일반인까지 보편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중 이백 시의 경우는 도학에 심취하면서 민산(岷山)에 숨어 선술(仙術)을 꿈꾸기도 하며 세상을 초월한 큰 꿈을 꾸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백의 의지는 이후 평생에 걸친 방랑과 자유로운 정신으로 포출되었으며 같은 시기 두보가 두 발을 현실의 땅에 붙인채, 한쪽 눈만 뜨고 세상을 보는 정도였다면 이백 시는 두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하였다. 이런 그의 생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시가 바로 "이백 산중문답" 이라고 할 수 있다.
산중문답(山中問答)
問余河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그대 왜 푸른 산에 사는가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대답 없이 웃는 마음 절로 한가롭네
挑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숭아꽃 흐르는 냇물이 아득히 멀어지는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인간사 벗어난 다른 세상이 있다네
푸른산과 아무런 말이 없는 주인공, 그리고 냇물과 떠내려가는 복숭아꽃은 도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기백과 인간사의 헛된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 선인(仙人)의 심정을 매우 잘 표현한 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백은 애주가로 매우 유명한 시인인데, 그의 일생에서 여행과 술이 없었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지 못했을 꺼라는 소문도,, 그가 너무 술을 좋아해서 두보는 이백을 가리켜 '주중선' 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사람들은 '취선옹'이나 '주태백' 이라는 별명까지 붙일 정도로 술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궁내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후대에 전해지는 전설로는 그가 채석강에 배를 띄워 놀때엔 만취하여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강물에 뛰어들다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