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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사

인류 최악의 인종차별정책_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by show쇼 2018. 8. 1.

인류 최악의 인종차별정책_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지금의  아프리카너(Afrikaner)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거주하는 백인 중, 케이프 식민지를 형성한 네덜란드 이민자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위그노, 독일계 개신교도 같은 종교적 자유를 찾아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부에 정착한 개신교도가 합류하여 형성된 민족집단을 말한다)들은 원래 보어(Boer)로 불렸습니다.


보어란 단어는 네덜란드어로 농부를 뜻하는 'Boor'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므로 따라서 보어인은 네덜란드 농부들이라고 할 수 있죠

이들은 네덜란드가 해양강국이던 시절인 1652년.아프리카 대륙 남단 희망봉 근처에 케이프타운이란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이 곳에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본국에서 가난하게 지내던 농부들로 모두 개신교신자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보듯이 개신교는 카톨릭과는 달리 교황청과 같은 중앙통제조직이 없는 교단이고 따라서 다양한 종파로 나뉘어져 있는데,

당시에 이들도 아프리카에 정착하면서 나름의 독특한 교리를 만들어 냈는데 그것이 바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였습니다

아프리칸스어(16세기 남아프리카로 이주한 네덜란드계 주민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언어,여기에 주변 아프리카 토착어들과 영어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발전했고 지금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 중 하나이다)로 본래 격리라는 뜻을 지닌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별되는데 하얀 피부의 자신들은 구원받는 쪽이고 검은 피부의 원주민들은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보어인들은 이 곳의 자연조건상 주로 목축업에 종사했는데 여기에 필요한 인력은 전적으로 원주민인 흑인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만든 교리는 사실상 이러한 상황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백인들은 이 곳에 원래 살던 원주민들이 아니라 이주민들었고 그들을 둘러싼 다수의 흑인 민족들에게 흡수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수적 열세에 따른 공포감.그리고 지배자적 지위의 유지 등이 아파르트헤이트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1917년에 후에 총리가 된 얀 스머츠의 연설로부터 등장하지만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분리라는 개념은 영국 식민지였던 19세기 말부터 존재했지만 법률로 공식화된 것은 1948년의 일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단순히 흑인과 유색인종으로만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백인,흑인,컬러드,인도인 등으로 세분하였고 1950년대 이후에는 인종분리를 보다 명료화하려는 법령들을 제정했는데 예를 들면 인종 간의 혼인을 금지하는 법,인종 간 성관계를 금지하는 법 거주지를 인종별로 분리하는 법,공공시설을 인종 별로 사용하는 법 등이 그것입니다.


흑인의 도시거주는 고용된 노동자에 한했고 그들의 가족은 제외되었으며 따라서 흑인 남성은 부인과 아이들과 생이별해야 했습니다.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IOC와 FIFA같은 국제 스포츠기구에서도 축출당해 30년 가까이 올림픽이나 FIFA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이 최악의 인종차별정책은 1994년 최초로 흑인들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된 가운데 실시된 총선에서 65%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넬슨 만델라에 (당시 남아공의 흑인 인구 비율이 정확히 65%였다) 의해서 1994년 4월 27일에서야 완전 폐지되었다고 합니다.